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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 연포 아가씨 (1972) 9 месяцев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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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 연포 아가씨 (1972)

노래 이야기 가수 활동 경력이 62년째라고 하면, 보통 팔순이 넘은 원로가수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만 여섯 살 나이에 가수로 데뷔했던 하춘화 선배님은 가수 경력에 비해 아직도 60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가요계의 젊고 아름다운 원로가수입니다. 언제나 '최초'와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하춘화 선배님은 1961년 12월 3일에 첫 데뷔 앨범을 취입했는데요. 이 앨범은 당시 우리나라 최연소 가수의 독집 음반으로 화제를 모았고, 이어 63년 4월 1일,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에도 최연소 정회원이 되었지요. "제가 하춘화예요. 금년에 일곱 살입니다."라는 인사말로 시작되는 하춘화 선배님의 데뷔 앨범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노래란 것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꼭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이 어린 제가 여러분의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퍽 걱정이 됩니다. 아무튼 한 번 불러보겠어요." 그야말로 똑 소리 나면서도 앙증스러운 멘트가 이어지는 이 독집 음반에는 '효녀 심청 되오리다'를 비롯해서 모두 여덟 곡의 노래가 수록되었는데요. 악보는커녕 글씨도 제대로 읽지 못했던 어린 나이에도 모든 노래를 다 외어서 불렀고요. 이때부터 어린 하춘화 선배님은 노래로 전국 팔도를 순회하면서 '리사이틀의 여왕'의 역사를 쓰기 시작합니다. 1991년에는 최다공연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는데, 그 당시 공연기록은 1260회였고요. 현재도 1년에 30~40차례 콘서트와 디너쇼를 이어가고 있지요. 하춘화 선배님은 우리나라 신민요와 대중가요의 장르를 넘나들면서 양쪽 모두 소화가 가능했던 가수 이화자-황금심-박재란 선배님의 계보를 잇고 있는데요. 항상 최고의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하춘화 선배님에게도 무명의 어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데뷔는 했지만, 너무 어린아이를 돈벌이에 내몰았다는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고요. 학업을 하다 보니 활동이 어쩔 수 없이 부진해졌는데요. 1966년, 고봉산 선생님이 작곡한 '아빠는 마도로스'가 조금 반응이 있었지만 얼마 못가 잠잠해졌고, 이후 10년 동안 큰 히트곡 없이 극장쇼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하춘화 선배님이었습니다. 그러다 여고생 하춘화 선배님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는데요. 열여섯 살이었던 1971년 '물새 한 마리'를 부르게 되면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 거지요. 당시 다녔던 일신여상에서는 재학생의 연예계 활동을 제약했지만, 이 노래가 성공하면서 학교에서도 가수 활동을 허락하게 되고요. 그 결과 하춘화 선배님은 '물새 한 마리'로 방송에 출연할 수도 있게 되었고, TBC 방송가요대상과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면서 정상의 가수로 발돋움합니다. 그리고 이후 연달아 히트곡을 내면서 그야말로 하춘화 전성시대가 시작되었지요. 고봉산 선생님이 작곡한 '물새 한 마리'와 '잘했군 잘했어'​가 연속적으로 히트하면서 하춘화 선배님은 다른 유명 작곡가들의 곡들을 받아서 음악적 다양성을 넓혀갔는데요. 1972년에 발표한 '연포 아가씨'는 박춘석 선생님이 작곡하고 전우 선생님이 작사한 노래로 소식 없는 님을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아가씨의 마음을 밝고 곱게 노래한 곡입니다. "오늘도 님 기다리는 연포 바다엔 쌍돛대 외돛대 배도 많은데 한 번 가신 그 님은 소식도 없고 물새만 울어 울어 세월 흐르니 야속한 생각 눈물에 젖는 눈물에 젖는 연포 아가씨 ​ 오늘도 갈매기 우는 연포 바다엔 금모래 은모래 변함 없는데 사모하는 그 님만 간 곳이 없고 파도에 씻어가듯 세월 흐르니 그리운 정 한숨에 젖는 한숨에 젖는 연포 아가씨" ​열일곱 살이었던 하춘화 선배님은 연포 아가씨의 순정을 순수한 감성으로 불렀는데요. 감성은 순수하고 풋풋하지만, 노래의 표현력은 나이를 뛰어넘는 수준급 실력을 보여주면서 '연포 아가씨'는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고요. 충남 태안반도에 있었던 '연포 해수욕장'은 이 노래가 크게 성공하자, 1970년대 상성그룹에서 이곳을 개발하면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해수욕장으로 각광받았고, 젊음의 상징인 해변 가요제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하춘화 선배님은 인기가수로 부상했던 1972년부터 취로사업장용 손수레와 새마을 공장 등에 재봉틀을 기증했고요. 이후, 수많은 선행과 기증과 기부활동을 하면서 각 단체로부터 120여 차례 감사패를 받았고, '국내 연예인 중 최다 봉사활동자'라는 영예도 안았는데요. 2001년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에서는 1억 5천만 원의 수익금 전체를 결식아동 소년소녀 가장 돕기 성금으로 기증했고요.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진 데뷔 45주년 공연에서도 개런티를 포함해 수익금 전액을 환경미화원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기탁했던 훈훈한 미담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고운 목소리만큼이나 고운 마음씨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하춘화 선배님이 앞으로도 어떤 멋진 노래와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주실지 기대하면서, 연포 바다 수줍은 아가씨의 고운 순정을 만나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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