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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알 수 없는 인생, ... 새옹지마 2 недели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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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알 수 없는 인생, ... 새옹지마

110. 참으로 알 수 없는 인생, ... 새옹지마 "새옹지마"는 새옹이란 사람의 말에 관한 우화다, 어느 날 '말'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주위 사람이 "말이 생겼으니 좋은 일이다"고 말하자, 새옹은 "그게 좋을지? 나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 하나뿐인 아들이 말을 타다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 그러자 주위 사람이 슬퍼하며 위로했다. 그러자 새옹은 그게 좋을지? 나쁠지? 모른다고 했다. 얼마 후, 전쟁이 나자 젊은이들은 징병으로 끌려갔으나 아들은 가지 않았단다. ...   이처럼 나에게 닥친 일이 좋을지? 나쁠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역시 소인배는 작은 일에 만족하고 대인배는 큰 것을 바라본다.  참으로 우리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새옹지마의 교훈이 맞을지 모를 일이다.   사소한 일에 좋아하거나 기뻐할 일도 아닌 것이 많고 인생의 과정들이 걸쳐서 하나의 큰 인생을 그리게 되는 것을 잊어버리는 현실적응자가 되기가 너무 쉽기 때문이다.    내 삶에 이 분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마도 내 어딘가? 에 베여 있을 것이다. 91년에 신학교 복학 후 이 분을 처음 접했다. 그 때 한참 유명세를 탔다. "새벽을 깨우리로다"라는 책을 비롯해 구수한 달변과 비판적 성향은 그의 삶에서 나온 처절한 절규의 외침?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에는 인간극장에 영화로 T.V 드라마로 제작될 정도였으니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세상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후에는 북한을 방문해 통일을 꿈꾸기도 했고 낙오한 학생을 위해 대안학교도 만들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을 만드는 일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수년 전에는 두레교회를 세워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그래 신대원 때까지 야상을 입고 다닌 것도 그가 전도사 때 입은 것을 흉내 낸 것이었을까? 전철에서도 그의 설교 테이프를 듣고 다녔고 그의 책들도 읽었다.  평범함을 거부한 야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그의 진리에 대한 절박함이 나의 마음속에 박혔다.   그가 대학에서 철학개론을 강의했단다. "진리란? 사람들이 갖는 공통된 인식과 객관적 사실이 맞을 때 진리라 한다. .."   그때 한 학생이 말했다."교수님은 그 진리를 찾았습니까?""그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습니까?"라는 당돌한 질문에 ... 풋내기 김 교수는 "나도 그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라고 정직하게 답했다. 그때 학생이 끈질기게 말하길, "교수님! 진리도 모르고, 찾지도 못한 것을 어떻게 가르치십니까? 종강합시다!" 라고 했단다. 학기 초에 말이다.     후에는 불교에 심취하여 예불 때 “사홍서원”을 걸쭉한 목소리 때문에 선창하기도 했단다. 사찰에 갔을 때, "기독교에 회의를 느껴 불교에 귀의 했습니다."라고 말하자   스님은,"잘했다. 똑똑한 청년이구만! 말하자면, 기독교는 초등학교고 불교는 대학이지 .." 라며 칭찬을 했단다.   그러던 그는, 당시 고승이 입적할 때,  "무 ... 무"하는 죽음을 보고 다시 기독교로 돌아왔단다. 또 하나는, "신학동기 중에 커닝을 하고 목사되어 노회장으로 홀리 보이스를 내며 거들먹거리던 친구를 빗대어, .. 철학의 후예는 커닝은 안한다. 모르면 백지를 내지.." 라는 말들이 생각난다.   이 정도면 얼핏 진실한 삶이 아닌가? 1980-90 년대 큰 거리에는 학생들의 투석과 경찰의 최루탄 냄새가 진동하는 불신의 시대를 살았다. 그럴 때 적어도 나에게 그는 현대판 세례요한처럼 여겨졌다.  청계천 빈민선교를 위해 교수자리를 버리고 전도사로 목회하다 이혼의 아픔을 겪었고, 남양만에 이주한 그는 빈농민들과 함께 기적을 이루기도, 돼지파동으로 조롱을 받기도 했단다. 그의 동기는 선한 듯 했고 떠안은 빚도 은퇴 직전에 갚았단다.  그의 처절한 삶과 설교를 비롯한 책들 ..  그리고 금식과 묵상에 전념하는 듯했고 그런 수도사적인 삶이 매우 흠모 할만 했다. 생의 교훈이었다.  그런 그의 실험정신이 나이가 들어선 정치권에 참여했다. 결국 그는 대통령을 만들었다.   어떤 학자의 말이 생각난다."그의 허황된 말이 실현되지 않을 줄 알면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욕망의 한국사회는 병든사회이며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라고 했던가?  아직 확실친 않지만, 4대강, 해외에너지 .. 등은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 사건이 될 여지가 농후하다. 이 역시 새옹지마인가?    더우기 충격적인 것은 그가 개척한 두레교회의 장로한테 폭행을 당해 이런 몰골이 되었단 사실이다.  한편으론 측은하여 연민의 정도 느껴진다. 씁쓸하다. 마음 한 곳에선 먹먹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이 모습이 현재의 모습이다. 누구의 잘잘못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성도를 바로 세우고자 제자훈련 교제를 만들고 그 무언가를 했던 일들이 이렇게 되었다는데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 참담한 기독교의 현실이다.  해리 블레마이어스의 말처럼. "오늘날의 기독교 정신이 사라지고 없다"고 한탄한 것이 다시 한번 반복됐다. "세상은 길 잃은 양이고 교회는 길 찾은 염소다" 했던가?   아담의 타락 후 인간의 보편적 죄성이 중생한 성도에게도 그 죄책의 옛성을 벗지 못한다는 것 .... 당연한 것이지만 현실이 되니 맘이 아리다.     대신과 백석이 통합한다고 총회임원하고 개혁위하고 서로 중상모략하고 있다. 주님의 뜻대로 합한다면 반대할 수 없다. 그러나 부패한 목사의 정치적 이익관계의 퍼즐게임이라면 참담하다.    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소수를 버리길 주저하지 않는다. 아마도 대신은 분열됐고 통합전보다 더 분열됐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찢는 것이다. 영원을 영생을 말하면서 1년 2년도 내다보지 못하는 목사들이라니 ..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찾는 주님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한다. 모두 욕망의 산물이 아닌가?  예수가 없는 인생의 허무와 쓸쓸함과 죽음 ... 이것이 하늘의 고통이다.  예수가 있는 인생의 예수없는 삶을 사는 것은 이 땅의 또 다른 고통이다.   내 안에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소서 ! 음.. 이 영상이 유익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설정해 주시면 큰 힘이 됩니다. 인천 송도역 남인천 농협앞, 베짜마 카페에서 이종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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