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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유치원] 칸트 : 순수이성비판 7분만에 이해하기 4 года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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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유치원] 칸트 : 순수이성비판 7분만에 이해하기

철학, 그중에서도 '인식론' 분야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일컬어지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7분만에 읽어봅니다 :) ===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꼽으라면 칸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헤겔과 더불어 소위 서양철학사의 5대 천왕이라 불리는데요. 특히 이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 한 명을 꼽아야 한다면 칸트는 많은 경우 플라톤과 경쟁하며 정상을 다툴 겁니다. 그만큼 서양철학사에서 칸트의 위상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사람들은 흔히 그의 사상을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표현합니다.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돌고 있다는 천동설을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로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처럼, 칸트의 사상 역시 철학과 인류 정신사에 있어 거대한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는 것이죠. 우리는 이번 시간에 칸트의 3대 비판서 중 첫 번째 책이라 할 수 있는 순수이성비판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철학의 한 분과인 인식론에 일으킨 거대한 변화와 마주하고자 합니다. 칸트 이전의 인식론에서 대상은 ‘사물 자체’에 해당합니다. 대상은 그 자체로 완결된 형상을 지니며 주체에 앞서, 그리고 주체와 독립해서 존재하죠. 즉, 주체가 대상을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관계 없이 대상은 그 자체로 있습니다. 이런 사고관에 따르면 인식은 대상을 비추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마치 거울이 사물을 비추는 것처럼 마음이 대상을 반사하는 가운데 인식이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죠. 이처럼 마음을 거울에 비유하는 전통적 인식론에서는 참과 거짓의 기준 또한 대상에 두고 있습니다. 마음 속에 있는 표상이나 그것을 표현하는 말이 참이기 위한 조건은 그것이 대상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죠.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인식론을 ‘진리 대응설’이라 말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생각이나 말은 대상과 일치할수록 참됩니다. 반면 대상이 없는데 있는 것처럼 말하거나 원래의 대상과 다르게 말하면 거짓이 되죠. 그러나 칸트의 인식론이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건데요. 그가 보기에 지각은 물론 대상 자체의 성립 조건이 주체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상은 주체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사물 자체일 수 없습니다. 대상은 오로지 주체와의 관계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현상’에 불과해집니다. 여기에 따르면 참과 거짓의 기준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체가 대상을 원래대로 반영하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주체 내의 인식능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표상의 참과 거짓이 결정되는 것이죠.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칸트는 세상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을 문제 삼습니다. 즉, 인식의 메커니즘을 통해 세상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순수이성비판의 목적이자 목표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칸트가 말한 인식의 메커니즘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도식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간에 위치한 ‘현상’이란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들을 말합니다. 지금 나타나면서 보이고, 들리는 구체적 경험의 세계 전체가 바로 현상계이죠. 그렇다면 현상의 내용은 어디서 올까요? 바로 현상계 배후에 있는 물자체에서 옵니다. 물자체는 대상이 주체에게 나타나기 이전의 사물 자체를 말합니다. 여기엔 시간과 공간이 없으며, 우리가 현상계에서 발견하는 어떤 규칙이나 질서도 없습니다. 때문에 현상계에 있는 주체, 즉 인간은 물자체를 알 수 없죠. 그럼 현상계에서 경험되는 형식적 질서는 어디서 올까요? 바로 도식 오른편에 위치한 주체의 마음에서 옵니다. 3차원적인 공간이나 시간적, 인과적, 합리적 질서는 모두 주체 안에 있는 인식능력들에 의해 부과된 어떤 형식입니다. 세상이 인간에게 현상하고 개별적인 대상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형식은 의식 내부에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다는 것이 순수이성비판이 가지는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의 핵심입니다. 자,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을 위해 컴퓨터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죠. 가령 컴퓨터에는 시청각적으로 구현되는 모니터, 즉 스크린이 있습니다. 이 스크린은 칸트적 의미에서 ‘현상계’라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스크린에 무언가 나타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바로 입력된 내용입니다. 기억 장치에 아무런 내용도 저장되어 있지 않다면 스크린에는 아무것도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죠. 이건 아마도 칸트의 관점에서 ‘물자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더불어 저장된 내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정보가 화면에 구현되기 위한 형식적 조건입니다. 소프트웨어가 달라지면 똑같은 내용도 스크린에 나타나는 방식이 달라지죠. 어떤 소프트웨어에서는 흑백으로 그치던 화면이 다른 소프트웨어에서는 컬러로 구현되기도 하며, 평면적 재현에 그치던 것이 3차원으로 변환되기도 합니다. 칸트의 인식론에서 ‘소프트웨어’는 의식에 내재하는 형식입니다. 의식의 형식은 경험 이전에 있으면서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선험적’이죠. 그 의식의 선험적 형식이 없다면 대상은 현상계에 나타날 수 없습니다. 이는 선험적 형식 없이는 경험이 성립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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