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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8 "갈매못 순교 성인이 왜 나가사키 오우라 성당에?" 일본 천주교회사 2 года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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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8 "갈매못 순교 성인이 왜 나가사키 오우라 성당에?" 일본 천주교회사

#오우라성당 #나가사키성지순례 #갈매못성지 #갈매못순교성지 #일본26성인 #잠복신자 #보나투어 1865년 지은 오우라성당은‘일본 26성인 순교자 천주당’이라고 불리우기도 합니다.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한 26 성인에게 기도를 올리기 위해, 파리외방전교회에서 파견된 쁘띠쟝과 퓌레라는 두 프랑스인 신부에 의해 세워졌으며, 그 때문에 정면은 니시자카 언덕을 향하고 있습니다. 건물은 중세 유럽의 건축을 대표하는 고딕 양식으로, 현존하는 목조 교회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서 1933년에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성당내부에는 약 100년 전의 프랑스제 스테인드 글라스가 장식되어 있었으나 그 대부분은 원폭에 의해 크게 파손되었으며, 현재는 당시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새로 복원된 것이 혼재해 있습니다. 성당 안으로 아름다운 빛을 비추어주는 기도 공간이 있으며, 금교령 때문에 숨어 지내던 신자들을 발견한 교회로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조선의 가톨릭교회는 그 설립과 동시에 박해를 받기 시작하여 100년 동안 헤아릴 수 없는 순교자들을 배출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가혹하고 대규모적인 박해는 1866년을 기점으로 10여 년 동안 1만 여명이 순교한 병인박해였습니다. 그 병인박해 동안에 가장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한 지방은 현 대전교구인 충청도 지방입니다. 당시 충청도 지방은 조선교구 내에서 가장 가톨릭 신자가 많던 곳입니다. 마치 일본 교회사에서 나가사키 지역이 복음을 가장 먼저 받아드리고, 가톨릭 신앙이 가장 많이 뿌리내림으로써 순교자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듯이, 조선의 충청도가 그러했습니다. 충청도의 큰 고을들에서는 박해령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이 처형당했는데, 그 중에서 해안 보령의 충청수영(옛 해군기지)은 교회의 주요 인물들을 처형하는 장소였습니다. 그 충청수영의 사형장은 ‘갈매못’이라 일컬어지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당시의 조선교구 제5대교구장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와 선교사 2명과 평신도 지도자 2명이 1866년 3월 30일(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동시 순교하였습니다. 그 5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순교한 후 인근에 살던 신자들이 그분들의 시신을 몰래 거두어 안장해드린 곳이 ‘서짓골’이라는 곳입니다. 당시의 신자들이 가혹한 박해를 피하여 숨어살던 곳은 충청도의 험준한 산간지역이었습니다. 일본 교회의 3백년 박해기간 동안 나가사키 지역의 이키츠키와 고토 혹은 소토메 지역에 신자들이 비밀리 신앙을 지키며 살던 것처럼, 조선의 박해기간 동안 신자들은 주로 충청도의 산간지역에 숨어살았습니다. 그러한 충청도의 비밀 신자촌들이 분포한 지역이 ‘하부내포’입니다. 그 ‘하부내포’의 한 산골 마을이 ‘서짓골’입니다. 그 ‘서짓골’에 숨어살던 신자들이 병인년 3월에 ‘갈매못’에서 순교한 분들의 시신을 안장했는데, 그 일로 말미암아 그곳 신자들 또한 체포되어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그 참혹한 병인박해의 광풍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이던 1882년에 ‘서짓골’에 묻혀있던 순교자들의 유해를 수습하여 여기 일본 나가사키의 오우라 천주당에 옮겨 봉안하게 되었습니다. 그 ‘서짓골’의 신자들이 순교함으로써, 그곳 순교성인 무덤을 돌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유골들을 수습하였습니다만, 당시 조선에서는 따로 모셔둘 곳을 마련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순교성인들의 유골은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와 베드로 오매트로 신부와 루카 위앵 신부와 요셉 장주기 회장의 것입니다. 이러한 4명의 순교자 유골을 오우라 천주당에 보내드리고 모시는 일을 합의한 분들은 당시의 조선교구 재7대교구장 블랑 주교와 나가사키 교구장 프티장 주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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