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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 외로운 가로등 (1939) 4 года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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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 외로운 가로등 (1939)

노래 이야기 1939년 음반으로 출시된 '외로운 가로등'은 1세대 작곡가들 중에서도 선구자 역할을 하셨던 전수린 선생님의 곡으로 탄생했습니다. '트로트'라는 장르가 정립되기도전부터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다양성에 대해서 새로운 길을 제시한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트롯이라는 장르를 일본 엔카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변형된 형태 정도로 오해하고 계시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엔카는 우리 민요에서 큰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고, 초창기에는 한국 작곡가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그 음계와 색채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심지어 광복 전 한국 대중음악의 초창기에는 일본의 음악보다는 서양의 재즈나 블루스, 나아가 클래식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곡들이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지요. 5음계, 즉 대중음악 이론에서는 펜타토닉이라고 부르는 이 음계로 이루어진 노래는 전 세계의 많은 민속 음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락, 재즈를 비롯한 대다수의 장르에서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이 5음계인데 쉽게 말해 도, 레, 미, 솔, 라의 다섯 음만 가지고 노래를 만드는 방식을 말합니다. 엔카와 트롯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이 이 5음계를 사용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히려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 1920~30년대 우리 음악들을 살펴보면 5음계가 아닌 도레미파솔라시 7음을 모두 사용하는 노래들이 대다수입니다. 오늘 함께 감상하실 황금심 선생님의 '외로운 가로등' 또한 7음계를 사용해 만들어진 곡으로 블루스 리듬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곡이 1989년도 아닌 1939년에 만들어져 발표되었으니 그 시절 열악한 환경에서도 우리 선배님들의 음악적인 깊이가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지요. "황금심 양의 새로운 창법, 전수린 군의 심혈을 부은 근대희유(近代稀有)의 걸작입니다."라는 당시의 광고 문구를 보더라도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자존심이 높았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한글을 쓰지 못하게 하려는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중음악은 우리 민족의 혼을 담아 그 명맥을 지켜나갔고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대중가요는 민초들의 애환을 담은 '대중' 예술로 자리잡게 되었지요. 1930년대 이난영, 박단마 등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는 여자 가수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1937년 발표한 '알뜰한 당신'으로 스타덤에 오른 황금심 선생님이 1939년 '외로운 가로등'을 발표하면서 한국의 대중예술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비 오는 거리에서 외로운 거리에서 울리고 떠나간 그 옛날을 내 어이 잊지 못하나 밤도 깊은 이 거리에 희미한 가로등이여 사랑에 병들은 내 마음 속을 너마저 울려주느냐 희미한 등불 밑에 외로운 등불 밑에 울리고 떠나간 그 사랑을 내 어이 잊지 못하나 꿈도 짙은 이 거리에 비 젖는 가로등이여 이별도 많은 내 가슴 속을 한없이 울려주느냐" 현재 동아일보 사옥 자리에 위치했던 명월관, 한 여인이 며칠째 그 입구를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했습니다. 작사가 이부풍 선생님(본명은 박노홍)은 우연히 마주치게 된 그 여인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답니다. 간곡히 부탁해 듣게 된 사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바로 '외로운 가로등'이었다고 하는데 그 사연은 이랬습니다. 이 여인은 사랑하는 연인의 뒷바라지를 위해 화류계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남자는 사법시험을 치르고 검사가 되었고 출세한 그는 여인을 버리게 되었던 것이지요. 뱃속에 아이까지 가지고 있던 그녀는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고 애인이 자주 출입한다는 명월관 앞에서 기다리면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이지요. 너무 흔하고 뻔한 신파극 같은 이야기라서 사실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가로등'을 소재로 여인의 이별과 슬픔을 그린 가사는 지금 보아도 시적으로나 내용으로나 우리 가슴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2절의 가사에는 '희미한 등불'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2019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로등이라면 자동으로 제어되는 밝은 조명이 연상되지만 그 시절의 가로등은 조금 달랐다고 해요. 1897년 1월 우리나라에 최초로 등장한 석유 가로등은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도깨비불이라고 하며 도망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신기해하며 구경하러 모이는 이들도 있었지요. 1900년에는 전차 정거장이 있던 종로에 3개의 가로등이 설치되었고 그것을 관리하는 가로등지기라는 직업도 새로 생겨나게 되었다고 하네요. '외로운 가로등'이 1934년 작품이라고 기록된 자료들이 많지만 이 곡은 '알뜰한 당신' 이후에 발표된 것으로 1939년 박단마 선생님의 '끊어진 테이프'와 함께 발표되었습니다. 광복 후 황금심 선생님도 여러 음반에 이 곡을 다시 취입하여 비교적 깨끗한 음질로 감상할 수 있는 곡 중 하나가 되었고 많은 후배가수들도 이 곡을 리메이크했습니다. 조미미, 이미자, 배호, 은방울자매, 김연자 선배님 등이 음반에 이 곡을 실었고, 최근에는 2003년에 한영애씨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이 곡을 재해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답니다. 2019년 서울, 외로운 가로등 아래 쓸쓸한 풍경은 이제 상상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옛 모습이 되었지만, 정확히 80년이 지나 접하게 되는 이 노래는 여전히 우리 마음을 울리고 있네요. 많은 분들이 이 노래를 기억하실지는 미지수이지만 우리 가요역사에서 의미있는 아름다운 '유산'같은 이 노래를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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