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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 임란포로 빈센트 권은 왜 화형 당했나 4 года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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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 임란포로 빈센트 권은 왜 화형 당했나

- 소년 포로,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자가 되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천주교 신자는 1784년 세례를 받은 이승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보다 200년 가까이 앞선 시기에 천주교 신자가 된 조선인이 있었다. 1617~1632년 사이에 일본에서 순교한 사람들을 작성한 ‘205인 순교복자 명단’엔 ‘빈센트 카운(권)’이라는 이름의 조선인이 있다. 그는 도대체 누구이며,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갔을까? 기록에 의하면 빈센트 권은‘3천 기병을 이끄는 조선 장군의 아들’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잡혔다. 그런데 그를 일본으로 데려간 사람은 스페인 신부 세스페데스로 그는 천주교도였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요청으로 임진왜란 때 비밀리에 조선에 왔다. 조선을 방문한 최초의 서양인이었다. - 조선인 포로들 사이에 분 천주교 열풍 세스페데스와 함께 일본에 간 빈센트 권은 신학교에 입학해 선교사 수업을 받는다. 당시 일본엔 약 5~10만여 명에 이르는 조선인 포로들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1593년 나가사키에서 3백여 명과 1594년엔 2천 명 이상의 조선인이 세례를 받았다. 관계 사료를 추측해 볼 때 아마도 5천 명에서 1만 명 정도의 조선인 기독교도가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1610년엔 십시일반 비용을 마련해 나가사키에‘성 로렌조’라는 이름의 조선인 성당을 건립한 것이다. 조선포로라는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그들의 이야기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있는 ‘하끼야키 도자기’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빈센트 권은 이들 조선 포로들의 고달픈 삶에 위안이 되었다. - 조선 포로들은 왜 천주교 신자가 되었나? 조선인 노예 매매라는 충격적 사실을 접한 신부들은 대책회의를 열어 신도 중 노예 매매 하는 자들은 파문에 처할 것이라는 강력한 결의를 한다. 그들은 천주교도인 다이묘들에게 조선인 노예 해방을 호소하면서 한편으론 기금을 모아 조선인 노예들을 되사기도 했다. 정신적인 구원을 뛰어넘은 실천적 행동에 큰 감명을 받은 조선 포로들은 앞 다퉈 천주교 신자가 됐다. 그리고 예수회는 일본에서의 포교활동을 조선에서까지 이어가려한다. 교리와 기도서를 한글로 번역하며 포교와 자선을 통해 조선인 천주교도들의 중심에 있던 빈센트 권에게 그 임무가 맡겨졌다. 그는 예수회로부터 조선 전도의 특명을 받고 북경으로 파견된다. - 그의 마지막 선택, 순교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12년 기리시탄(크리스찬) 금지령을 발표한 이후 지속적으로 천주교를 탄압했다. 그리고 배교하지 않는 천주교도들에게 잔혹한 박해를 가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 일본에서 자선과 포교에 매진하고 있던 빈센트 권 역시 시마바라에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지만 굴복하지 않는다. 빈센트 권은 감옥에서 마침내 수사로 임명된다. 그러나 니시사카 언덕에서 끝내 화형을 당한다. 46세의 나이, 그가 조국을 떠난지 33년 만의 일이었다. 신역사스페셜 100회 – 임란포로 빈센트 권은 왜 화형당했나 (2012.3.8. 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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