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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HD역사스페셜 – 왜관은 일본의 첩보기관이었나 / KBS 20060707 방송 2 года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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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HD역사스페셜 – 왜관은 일본의 첩보기관이었나 / KBS 20060707 방송

◼︎ 조선국의 새와 짐승, 풀과 나무를 조사하라! 에도바쿠후의 8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무네는 조선조사령을 내려 조선의 동식물을 수집하게 한다. 대마도가 조선으로부터 입수해서 바쿠후에 헌상한동의보감이 그 원인이었다. 요시무네는 동의보감의 일본편을 갖고자 했고, 왜관을 거점으로 여러 가지 루트를 동원해 자료를 수집하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비밀문서, 서적등도 유출되는데... 일본은 왜관을 통해 조선의 정세뿐 아니라 북방정세까지 수집하고 있었다! ◼︎ 왜관은 재외공관이자 무역사무소였다 일본에 남아있는 초량 왜관도는 약 22점. 당시 일본이 조선의 왜관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지도에 따르면 왜관은 마치 읍성처럼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조선인 마을과 격리되었으며 왜인들의 출입도 제한됐다. 취재진은 현재 부산의 용두동 일대로 알려져 있는 왜관의 흔적을 찾아가 보았다. 또한 거국적인 조일 합작품인 왜관을 그래픽으로 복원해본다. ◼︎ 대마도는 왜 조선과의 무역에 사활을 걸었는가? 7년 전쟁 이후, 단절되었던 조일 관계가 활발해진 것은 대마도의 역할이 컸다. 대마도의 실세인 소우씨 가문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 양측에 무역재개를 강력하게 요청하는데...심지어 국서를 위조하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면서까지 조선과 무역을 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은, 비단, 인삼의 유통경로를 통해 왜관이 동북아의 허브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외교 문제로까지 번진 교간사건이란 무엇인가? 1690년 네 명의 여인이 왜관에 들어가 일본인에게 몸을 판 사건이 밝혀진다. 관련자를 모두 사형시킨 조선과 달리, 관련자를 내놓지 않거나 몰래 귀국시켜 버리는 조치를 취했던 일본! 일본의 데지마 네덜란드 상관 역시 남성들만의 거류지였지만 일본 유녀의 출입은 자유로웠다. 외교 문제로 번진 교간 사건을 통해 조선과 일본 문화의 차이점을 찾아볼 수 있다. ◼︎ 조선의 교린과 일본의 성신외교! 명분과 실리의 차이 10만 평이나 되는 왜관을 건설하고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은 엄청난 것이었다. 조선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본과 교류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의 유학자들은 일본을 교화를 통해 복속시킬 수 있는 야만의 나라로 인식해 소중화주의 사상에 입각한 교린을 실천한다. 그러나 일본은 왜관을 통해 인삼을 유출, 국산화에 성공하고 동의보감을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를 파악하는데 활용했다. 왜관을 통해 나타난 조선과 일본의 외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HD역사스페셜 52회 – 왜관은 일본의 첩보기관이었나 (2006.7.7.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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